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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난임, 엄마가 되기까지

직장인 난임 부부의 병원 순례기, 검사만 3곳 다녔다

by 여행책갈피 2025.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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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기대와 실망 사이, 우리가 견뎌낸 시간들

결혼 후 아이를 준비하며 병원을 세 군데쯤 다녔다.
한 곳만으로는 안심이 되지 않았고, 조금이라도 더 확실한 결과를 듣고 싶었다.
그렇게 유명하다는 산부인과, 대학병원, 불임 전문 클리닉까지 두드렸다.

나와 남편 모두 임신 전 검사를 받았다.


결혼이 늦었던 만큼 걱정도 많았고, 혹시나 하는 불안감이 늘 마음 한켠을 짓눌렀다.

그런데 이 모든 걸 직장을 다니며 병행한다는 것, 그건 생각보다 훨씬 더 고된 일이었다.

월 2~3회는 기본이었다.
병원 예약에 맞춰 시간을 빼야 했고, 때로는 오전 반차, 때로는 점심을 굶고 진료실에 다녀와야 했다.
그렇게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며 10개월 가까이 병원을 오갔다.

매 달, 기대했다.
이번 달엔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매 달, 실망했다.
희망은 반복될수록 점점 작아졌고, 실망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그럼에도 웃을 수 있었던 밤들

그런 시간 속에서도, 남편과 나는 참 잘 웃었다.
밤이면 손을 꼭 잡고 동네를 산책했고, 때때로 작은 바에 들러 와인 한 잔을 나눴다.
아이는 오지 않았지만, 그 시절의 우리는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가끔은 충청도 쪽으로 바람을 쐬러 다녀오기도 했다.
창문을 열고 달리는 국도에서, 아무 말 없이 음악만 듣던 그 시간들이 지금도 기억에 선하다.
몸은 지쳐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럼에도 웃을 수 있었던 밤들
그럼에도 웃을 수 있었던 밤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말한다면

이제 와서 돌아보면, 그때의 나에게 조언하고 싶은 게 참 많다.
"조금만 더 느긋해도 괜찮아."
"병원만이 답은 아니었을지도 몰라."
"너는 정말 열심히 하고 있어, 그걸 잊지 마."

하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지금의 내가 아무리 얘기한들, 아마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간절했고, 그만큼 절박했다.


시간과 체력, 그리고 돈이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시간이 있으면, 체력이 있으면, 돈이 있으면 아이는 당연히 생기는 거라고.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생명이 내게 오는 일은 단순한 수치나 논리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건 기다림이고, 기적이며, 사랑의 언어였다.


지금 생각해도 따뜻한, 그 열 달의 기록

비록 결과는 오지 않았지만,

 

그 시간 속의 나는 충분히 빛나고 있었다.
지쳤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슬펐지만 웃을 수 있었다.
기다림이라는 고요한 강을 건너던 그 시간들,

 

지금 돌아보면 눈물보다 따뜻함이 먼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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